[아내와 양극성장애] 4편. 부작용
이 글은 저와 아내가 경험한(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이전 글 : [아내와 양극성장애] 3편. 호캉스)
[아내와 양극성장애] 4편. 부작용
병원에서 퇴원한 뒤, 며칠 만에 집에 돌아온 저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하루 종일 같이 있어주기를 원했습니다. 아내는 예전부터 청소하는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제가 일을 그만두고 둘이서 함께 청소하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석사까지 마치고 적성에도 잘 맞는 직종을 버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또, 아직 회복 과정에 있는 아내가 과연 종일 청소하는 일을 할 수 있을지 확신도 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택 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게 되면 수시로 아내의 상태도 확인할 수 있고, 점심 식사도 함께 할 수 있고, 줄어든 출퇴근 시간에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에 아내의 회복에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퇴사를 결심하고 오랜만에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를,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저를, 이 회사에서 고용해 주었습니다.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회성도 부족했지만 저를 고용해 주었습니다. 저는 이 회사 덕분에 경제적인 문제도 많이 해결할 수 있었고, 다양한 경험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군대를 다녀오기 위해 회사를 잠시 그만 두려고 했을 때에도, 약 4년 정도 되는 기간을 휴직 처리까지 해주며 기다려 준 회사였습니다. 생판 모르던 남인 저를 잘 대해주셨던 당시 대표님께 이 글을 빌려서 감사 드립니다.
또한 저의 직장 상사였던 부장님(지금은 이사님)께서는, 자신과 성향이 너무나 다른 저를 기다려주시고 믿어주시면서 좋은 경험의 기회도 많이 제공해 주셨습니다. 성향이 다른 부하 직원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셨을 텐데 (그것도 사회성이 부족한 경우에는 특히!!), 지금 되돌아 보면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뭐.. 저도 성향이 다른 상사와 일하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평불만이 늘고, 때때로 맡겨진 일이 버겁고 힘든데 일정까지 재촉 받는 날에는 대들기까지 하면서 싸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부장님이 아니였다면 지금의 저는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이사님이 되신 그분께 이 글을 빌려서 감사 드립니다.
일도 힘들고 경직된 회사 문화도 싫고 이것저것 불평불만도 많아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취업 제안을 받아도 모두 거절했습니다. 꽤 괜찮은 곳에서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거절했습니다. 제가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발판을 마련해 준 회사를 돈 때문에 떠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다른 회사에 시험삼아 이력서 한 번 넣어본 적도 없고, 다른 회사를 쳐다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마주한 상황은 예상 밖의 상황이었습니다. 저는 우선 재택 근무가 가능한 회사로 이직을 해보고 그래도 아내가 좋아지지 않는다면 다 때려치고 아내가 원하는 대로 청소하는 일이라도 해볼 작정이었습니다.
저는 직장 상사인 이사님께 퇴직 의사를 밝혔고, 한 달 정도 출근 후에 그만두겠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사님께서도 갑자기 벌어진 일에 당황하셨을 것입니다. 신입 직원도 아니고 짧지 않은 시간동안 함께 일해왔던 사람이 갑자기 그만두면, 회사 입장에서는 당황스럽겠죠... 그것도 회사가 바쁜 시기에 말이죠...
이사님께서는 퇴직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저에게 권면하셨지만, 저에게는 제 삶의 전부와 같은 아내와 관련된 일이었기 때문에 전혀 설득되지 않았습니다. 회사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무척 절박했고, 그동안 회사를 우선하고 아내를 뒷전으로 두었던 삶이 후회스러웠습니다. 집에서 종일 같이 있는 것이 아내의 소원이라는데 꼭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간에 논의 끝에, 저는 회사 측의 배려로 이직을 하지 않고 재택 근무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직원(근로자)으로서의 지위(?)는 유지할 수 없었고 현재는 프리랜서로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을 빌려서 재택 근무로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현재 대표님께 감사 드립니다.
결과적으로는 재택 근무로 일하게 되었지만, 주요 업무에 대한 인계인수 등을 고려하여 어쨌든 한 달 정도는 출근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 기간동안 저는 무척 힘들었습니다.
종종 퇴근해서 집에 가면 아내가 울고 있었습니다. 이유를 모릅니다. 그냥 힘들어서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 아내를 데리고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습니다. 퇴근 이후나 주말에 외식을 하거나 데이트를 하면서 달래고 버티는 수 밖에는 없었습니다.
어느날은 아내가 혼자서 외래 진료를 다녀오겠다고 하였습니다. 놀랍게도 혼자서 운전까지 하며 다녀왔는데 먹던 약(탄산리튬-리튬, 아빌리파이-아리피프라졸, 쎄로켈-쿠에티아핀)을 다 줄이고 최소한의 약(탄산리튬)만 처방 받아서 왔습니다. 스스로 괜찮다고 생각하여 의사 선생님께 약을 줄여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며칠만에 밤에 잠을 잘 못자기 시작하면서 급기야는 한밤 중에 저를 깨우기까지 했습니다. 사태의 심각함을 늦기고 이튿날 곧장 병원에 갔지만 강원대 병원은 워낙 사람이 많아서 원칙적으로는 당일 진료가 불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너무나 절박했습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이 통했는지 가장 마지막 순서로 진료를 잡아주셔서 간신히 진료를 받았습니다. 없앴던 아빌리파이를 다시 추가하고, 쎄로켈은 잠이 안 올 때만 먹는 것으로 변경되었습니다. 그리고 손떨림 등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서 인데놀(프로프라놀롤염산염)을 추가로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아내는 약이 다시 늘어난 것에 대해서 매우 실망스러워 했습니다.
아내는 증상이 완화되어서 퇴원한 것이었지만, 아직 신체적으로는 조증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높은 농도의 약물이 필요했습니다. 몇 주(몇 달) 뒤에 조증이 가라앉으면 약이 줄어들겠지만 당분간은 아니었습니다. (조증이 가라앉더라도 유지 치료를 위해서 약은 계속 복용해야 합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대체로 2주 이상은 지나야 약효가 납니다. 퇴원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점차 약효가 나면서 아내가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조증삽화가 오기 이전에 혼자서 우울해하며 보내던 그 시절보다 더 좋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제 생각과 달리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재택 근무를 하며 아내의 일상을 곁에서 보니 약 기운 때문에 하루를 거의 자면서 보냈습니다. 깨어 있을 때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괴로워하며 보냈습니다.
아내는 약물의 부작용으로 집안 일은 커녕, 취미 생활이나 TV 시청 조차도 힘들어 했습니다. 대화를 하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약 때문에 체중이 부쩍 늘자 한동안은 유튜브에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운동들을 찾아서 하기도 했지만 생리기간까지 겹치면서 운동까지 못하게 되자 힘들어 했습니다.
저는 아침/저녁으로 양극성장애와 관련된 책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왜 이런 질병이 생기는지, 아내가 먹는 약이 어떻게 효과를 발휘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배우자로서 어떻게 해주어야 하는지 등등...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주치의께서는 약국에서 파는 약은 특별히 신경쓰지 않고 먹어도 된다고 했지만, 책을 읽어보니 흔히 먹는 진통제나 파스도 조심해야 했습니다. 여러분은 파스도 진통제의 일종이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리튬의 경우 이부프로펜 성분과 함께 복용하면 리튬 농도를 상승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저용량을 단기간 먹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서 주치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은데, 제 입장에서는 최대한 조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부터 아내가 생리통으로 진통제를 먹을 때는 타이레놀(아세트아미노펜)만 먹도록 했습니다.
복용 중인 약물 정보는 약학정보원-https://www.health.kr- 에서 조회하시면 편합니다.
여러 책을 읽어 보았는데 "더미를 위한 양극성장애"(칸디다 핑크/조 크레이낙 저, 한소영 역, 시그마북스)가 제일 좋았습니다. 이 책은 밀리의 서재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책은 열심히 읽었지만 당장 옆에서 우울해 하는 아내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저 약효가 나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때로는 낮에 제가 일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괴로워하며 한숨을 쉬거나 울고 힘들다고 중얼거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럴
때는 일을 중단하고 차에 태워서 드라이브라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외래 진료 때 아내가 우울해 한다고 지속적으로 말씀 드리자 (보통은 조증 재발 위험성 때문에 양극성장애 환자에게는 잘 쓰지 않지만) 항우울제(브린텔릭스-보티옥세틴)을 추가로 처방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내가 단순히 우울해 하는 것이 아니라 가만히 있는 것을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것을 "우울하다"고 받아 들였는데 그게 아니라 "좌불안석"이라는 부작용을 겪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책을 보니 아내가 먹는 약 중 "아빌리파이"에 "좌불안석"이라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그 책에 따르면 심한 사람은 자신의 피부를 뚫고 나가고 싶어할 만큼 힘들어 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의사 선생님께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 여러 차례 여쭤도 특별한 말씀이 없으셨는데 "좌불안석"이라는 용어를 쓰니 즉각 부작용이라고 받아들이시면서 약을 감량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아예 빼자고 하셨습니다. 저는 의사 선생님의 반응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왜 처음부터 알려주지도 않고, 자세히 물어봐주지도 않으셨을까요? 진료해야 하는 환자도 많고 전공의 교육도 해야 해서 바쁘고 힘드신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는 무척 속상했습니다.
아내는 그 약을 감량했음에도 계속 좌불안석이 있어서 결과적으로 그 약을 뺐습니다. 그러면서 부작용을 줄여주는 약(인데놀)도 함께 뺐는데, 이 때 항우울증약(브린텔릭스)은 유지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드디어 살 것 같아 했는데, 이번에는 구토 증세가 시작되었습니다...
구토는 약이 바뀐 후 며칠 뒤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며칠 간 아내는 아침마다 어지럽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니, 아침 약을 먹고 나면 토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실수로 저녁에 아침약을 먹은 적이 있는데 그 때도 구토를 하려고 했습니다. 항우울제는 아침에만 먹기 때문에 저는 항우울제의 부작용을 의심했습니다. 그동안 괜찮았던 것은 부작용을 줄여주는 약을 함께 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다음 외래까지 기다렸다가 주치의께 말씀 드리니 이번에도 부작용에 대해서 완고하셨습니다. 어지러움으로 인한 구토라면 이비인후과에 가보라고 했습니다. 이비인후과에 가보았지만 의심되는 문제는 없었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어지럼증에 도움이 되는 약을 처방 받았는데 그 약을 먹으면 구토 증상이 완화되기는 했지만 며칠이 지나자 더는 약효가 나지 않았습니다.
아내도 괴로웠겠지만 저도 너무 괴로웠습니다. 우리는 다음 번 외래 진료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근의 개인 정신건강병원을 찾아갔습니다. 자초지정을 설명하니, 우선은 의심이 되는 약의 복용량을 반으로 줄여서 며칠 지켜보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약을 복용하지 않도록 말씀해 주셨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은 늘이는 것도, 줄이는 것도 급격하게 하면 안 됩니다. 갑자기 늘리거나 줄이면 부작용이 심합니다).
그래서 며칠간 약을 줄여보았는데 여전히 구토가 있었고, 그래서 그 약을 아예 먹지 않자 드디어 구토가 사라졌습니다.
마침내 외래 날이 되었고, 주치의께 상황을 말씀 드리니 부작용이 있으니 복용 약물에서 제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유지 치료에 필요한 최소량의 "리튬"만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약 2주간 아내는 놀라울 만큼 잘 지냈습니다. 거의 종일 취미 생활에 몰두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저는 무척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곧 다시 우울해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좋아진 것이 아니라 그동안 먹었던 항우울제의 효과가 잠시 나타났던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의사 선생님께 말씀 드려서 약 처방을 바꿔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그동안 겪은 약물의 부작용이 무섭고 싫어서 그러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루종일 TV 조차 볼 수 없을 만큼 괴로운 좌불안석, 약만 먹으면 나오는 구토, 그 밖에도 종일 지속되는 무력감, 졸림 등등... 게다가 계속 약을 복용했지만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는 마음 상태.. 제가 봐도 약을 거부할만 합니다.
여기에 더해서 이 질병을 육체적인 질병으로 생각하는 저와는 반대로 아내는 영적인 문제로 생각하였고 이 부분 때문에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아내는 제 의견을 존중해서 약을 먹어주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최근 들어서야 재발과 증상 호전을 겪으면서 약물 치료를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재발과 증상 호전은 다음 글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저는 약물 치료 외에 아내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일들을 찾아서 해보았습니다. 취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점심 식사 후에는 잠깐 산책도 하고, 저녁이나 주말에는 데이트와 외식도 자주하고, 애완동물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한동안 아내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내는 대체로 낮 시간을 혼자서 잘 보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이 바빠서 며칠 정도 함께하는 시간을 잘 갖지 못하면, 아내는 점차 나빠지다가 결국에는 힘들다며 중얼 거리거나 계속 한숨을 쉬면서 괴로워했습니다.
아내가 옆에서 하루 종일 우울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와중에 회사 일까지 바쁘고 잘 안 풀릴 때는 저도 정말 미칠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제가 일하지 않고 같이 있어 주기를 바랐습니다.
아내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서 키우기 시작한 애완동물은 부담이 되었습니다. 아내를 챙기고 회사일을 하고 집안일까지 해야 해서 버거운 상황에 애완동물까지 돌봐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내는 애완동물에게 질투심까지 느끼고 있었습니다. 제가 다정한 말투로 애완동물에게 말을 건내는 것에 질투가 났다고 했습니다.
상담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까 싶어서 주치의께 여쭤보았지만, 잘못하면 자극이 되어서 병세가 나빠질 수 있으므로 안정이 될 때까지는 약물 치료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그만 두었습니다.
아내는 한 달 중 1~2주 정도는 대체로 혼자서 잘 지냈지만, 대다수의 시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우울감 때문에 괴로워하며 지냈습니다.
한편 제가 읽은 책에는 약물을 변경하자 이유를 알 수 없던 우울감이 사라졌다는 사례가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어릴 때 양극성장애로 진단을 받고 처음에는 리튬을 복용했으나 너무나 괴로운 시간을 보냈고 발프로산(데파코트)으로 바꾼 이후에도 좀처럼 감정 밑바닥의 깊이 깔린 우울감은 사라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항우울제와 항정신성 약물을 바꿔가며 총 22가지 약물의 부작용으로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15년이 지난 어느날 라모트리진을 복용하자 그토록 그를 괴롭히던 우울감이 사라졌습니다.
이 사례에 대해서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시면, "더미를 위한 양극성장애" p119, "효과적인 치료 과정은 정확한 진단에서부터 출발한다"에 소개된 내용을 확인해보세요.
리튬, 발프로산, 라모트리진은 모두 기분조절제로서 양극성장애의 조증삽화나 우울삽화를 치료/예방하는 약입니다.
이 사례를 보고 저는 약을 바꾸면 아내가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리튬을 라모트리진으로 바꿨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약물 치료에 계속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외래 진료 때면 잘 지내고 있다는 식으로 간단히 답변하고 리튬만 처방 받아 왔습니다.
그렇게 여러 달을 지내다가 2024년 8월에 아내와 저는 약물 치료로 갈등을 겪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치의께 사실대로 (우울감으로 힘들다고) 말하고 약 처방을 바꿔보자고 했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약이 늘어나는 것이 싫다며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그날 있던 외래 진료 때 주치의께 아내가 잘 지내지 못하고 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하지만 주치의는 일중독인 저와 그렇지 아내 간의 성격 차이 정도로 받아들이셨고 약물은 그대로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무척 실망스러웠습니다. 아내가 더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내 욕심인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일단락 된 줄 알았는데... 그 후로 며칠간 아내는 저와 함께 있는 것을 답답해 했습니다. 제가 자꾸 강요하는 것 때문에 답답하고 힘들다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혼자 있고 싶다며 점심에 혼자서 나갔다 오기도 했습니다. 저도 이런 상황이 무척 답답하고 괴로웠습니다.
아내는 그 이후에도 거의 매일 힘들다거나 괴롭다거나, 앞으로 어떻게 살면 좋겠냐고 하며 극심한 우울감을 호소했습니다. 집안일을 할 때도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도 많았습니다. 신앙적인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극심한 우울감에 빨리 천국에 가고 싶다(=죽고 싶다)고 말하기 일수였습니다. 아주 드물게 잘 지내기도 했으나, 이내 곧 다시 우울해졌습니다.
아내는 교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원래도 내향적인데 병세까지 겹쳐서 사람들의 말을 왜곡해서 받아들이고 정말 사소한 갈등으로도 매우 괴로워했습니다.
그래도 2024년 가을에는 대체로 잘 지내는 날들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대다수의 시간을 좋아하는 영어 공부를 하거나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지냈습니다. 남이섬에서 둘이서 데이트하며 예쁜 사진도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해 겨울, 아내는 서서히 우울의 늪에 빠져 들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회사 일로 12월을 바쁘게 보냈고 아내에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했습니다 (데이트를 하는 등 함께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 때는 아내가 괜찮아 보였는데, 그러고 나서 2025년 1월을 맞이하니 어느사이엔가 아내가 극심한 우울함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좋은 꿈이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제 생각에 선하고 좋은 일들을 열심히 해왔습니다. 회사에서는 개선이 필요한 업무를 적극적으로 개선했고, 업무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며 잘 가르쳐주고 도와주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맡겨진 일들을 오랫동안 꾸준히 감당했고, 특별히 교회 학생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잘 배워서 학생들의 가치관과 생각이 바른 방향으로 향할 수 있도록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잘 가르치기 위해 애썼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손 내미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내 일처럼 도와주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발병하면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습니다. '내가 좋고 선한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도와주시는 않고 어째서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가?'라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저는 감히 성경에 나오는 의로운 사람 욥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지만, 제가 욥의 처지가 된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평생 죄를 멀리하면서 살아온 욥. 자녀들이 잔치를 벌이면 혹시라도 잔치를 즐기다가 죄를 지었을까봐 자녀들을 위해서 제사를 드린 욥. 그가 그토록 조심했건만 하루 아침에 그가 가진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자녀들은 죽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온 몸에 종기가 나서 그를 괴롭히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참고 참다가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도대체 저에게 왜 그러시는 거죠?"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혹시 제가 죄를 지었다고 한들 그게 전능하신 분께 무슨 해가 되나요?"
"하나님은 저에게 벌을 주시려고 저를 감시하는 분이신가요?"
"제가 젊었을 때 지은 죄 때문에 지금 저에게 이렇게 하시는 건가요?"
"도대체 저에게 왜 이러세요? 누가 하나님과 나 사이에 중재를 해줘서 나의 억울함과 답답함을 풀어주면 좋겠어요."
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마음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을 하려고 늘 애써왔는데, 저에게 벌어진 일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두 가지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1. 이 일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든 아니든 누구에게나 벌어질 수 있는 일반적인 일이다.
욥은 하나님께 벌 받는 것이 두려워서 언행을 조심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잘 섬겨도 어떤 일들은 피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를, 바로 저를 대신해서 채찍질과 멸시를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더라도 고통스러운 일이 벌어집니다. 성경에 도피성 제도가 있습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경우 그 성으로 피해서 복수를 받지 않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서 사는데 그런 일이 왜 벌어질까요? 이신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경우에는 사탄이 이유없이 그를 괴롭히고자 하나님 앞에서 그를 고발했습니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사탄의 요구를 허락하셨지만 욥의 생명까지는 허락하지 않으셨고, 후에는 욥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서 믿을만한 욥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셨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한 많은 선지자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고통 가운데 죽었으나 오늘날 우리는 그 선지자들의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압니다. 역시 하나님께서는 그 선지자들을 믿고 그 중요한 일을 맡기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경우에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서 기꺼이 그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괴로워하셨는데도 피하지 않으시고 순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을 통해서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비록 저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던 예수님의 뒤를 따르렵니다. 저도 순종함으로써 예수님처럼 부활의 영광을 얻으렵니다.
2. 하나님께서 "나"에게 바라시는 것은 이것 저것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픈 아내를 잘 돌보는 것이다.
저는 좋은 일이라면 가능하면 많이, 온 힘을 다해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큰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다른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큰 일을 맡기시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많은 일을 맡기시기도 하지만 저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것 같습니다.
예전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줄어 들어서 속상하지만, 이제는 아내를 사랑하고 돌보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깨달음과는 별개로, 당장 일은 해야 하는데 아내가 옆에서 하루종일 힘들다거나 천국에 빨리 가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상황을 마주하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미쳐버릴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의 이런 증상은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2025년 들어서 이전보다 눈에 띄게 심해졌습니다. 더는 제가 일을 할 수 없을만큼 심했습니다.
그래서 병원을 바꾸기로 결심했습니다. 강원대학교병원은 우리 지역에서 크고 좋은 병원이지만, 사람이 많고 주치의께서 매일 진료가 가능하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시로 병원에 갈 필요가 있는 현재의 아내 상황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또 일전에 약 처방 변경에 긍정적이지 않으셨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진료를 받고 싶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알아보다가 베드로병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와 연관이 있는 것 같아서 신앙적인 고민도 쉽게 말씀 드릴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부작용 등으로 약물 변경에 망설이고 고민하는 아내를 설득해서 베드로병원에 데리고 갔습니다.
병원은 한산해서 예약 없이 방문 했는데도 금방 진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원장 선생님께서는 매우 친절하셨고 여유가 있으셨습니다. 아내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어주시고, 이것저것 자세히 물어보시면서 진료를 보셨습니다. 이 질병을 영적인 문제로 생각하고 있는 아내에게 뉴런과 시냅스를 그려서 보여주시면서 영/혼/육 중 육신과 정신의 질병이라는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는 책에서 읽은 라모트리진을 말씀드렸는데 그보다는 바렙톨(발프로산)을 복용해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원래 먹던 리튬을 반으로 줄이고, 대신 발프로산을 추가로 복용하게 되었습니다. 제 뜻대로 안 되어서 아쉽기는 했지만 사실 라모트리진의 부작용(스티븐스-존슨 증후군)이 무섭기도 했기 때문에 원장님의 말씀에 바로 수긍하고 진료를 마쳤습니다.
그 날 저녁이 되었습니다. 그 날은 수요일이라서 교회에 예배 드리러 갔습니다. 그런데 예배 중간부터 아내가 배가 아프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예배조차 마음대로 드릴 수 없는 것에 짜증이 났습니다. 아내에게 집에 갈 건지 물어보았는데 참아보겠다고 했습니다.
예배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내는 저에게 계속 배가 아팠던 얘기를 했습니다. 그 얘기를 듣던 저는 어째서인지 기분이 점점 가라앉고 아내의 말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가능하면 아내에게 안 좋은 영향이 될까봐 걱정이 되어서 힘들어도 내색을 안 하는 편이지만 저도 너무나 지쳤었습니다. 아내도 저의 기분을 눈치채고 왠지 신경을 쓰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지친 표정과 푹 꺼진 어깨로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습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 아버지께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저는 온유한 모세 같지도 않고 의로운 욥 같지도 않은 거 아시잖아요. 그 사람들도 실수하고 실패했는데 저는 시험해보나마나 실수하고 실패할 게 뻔하지 않습니까? 해보나마나 결과가 뻔한데 저를 왜 시험하십니까? 이제 좀 그만 하시면 안 됩니까?"
그렇게 저는 다시 푹 쳐진 모습으로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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