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양극성장애] 3편. 호캉스
이 글은 저와 아내가 경험한(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이전 글 : [아내와 양극성장애] 2편. 정신병원)
[아내와 양극성장애] 3편. 호캉스
영원히, 다시는 만날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아내를 되찾은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요? 그 기쁨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아내는 여러 약물에 의해서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습니다. 조금은 이상한 부분이(자꾸 눈이 돌아간다고 하거나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거나 하는 등) 남아 있었지만 일상 대화가 가능해졌습니다.
저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갑자기 빛을 되찾은 기분이었습니다.
저희는 병실이 없어서 2인실을 배정 받았습니다. 그런데 폐쇄병동도 아니고 일반병동도 아닌 개방병동에 병실을 배정 받았습니다.
개방병동은 낮에는 자유롭게 다니고 핸드폰도 쓸 수 있지만, 밤에는 출입문을 잠그고 또 소지품도 일부 제한되는 병동이었습니다. 정신병원하면 떠오르던 "폐쇄병동" 말고 다른 종류의 병동이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저희가 배정 받은 병실에는 이미 다른 분이 입원해 계셨는데, 아내가 조증삽화라서 말도 많았고 또, 저희 둘이서 꽁냥 거리는 것 때문에 많이 불편해 하셨습니다. (이 글을 통해, 저희 때문에 불편하셨던 그분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렇다고 아내가 말을 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도 없었고, 또 아내가 다른 사람들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저는 아내가 빨리 좋아지려면 1인실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 생각은 하지 않고 1인실로 가기로 결정한 뒤,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 1인실로 가고 싶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의사 선생님께 확인 후 알려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아둔 돈은 거의 없었지만 정 안 되면 퇴직금이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잠시 후 다행히도 의사 선생님께서 보호자가 동행한다는 조건하에 1인실 이동을 허락하셔서 저희는 입원한지 하루도 안 되어서 1인실로 이동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1인실은 일반병동이었기 때문에 꼭 보호자가 곁에 있어야 했고, 만약 보호자가 없으면 다시 개방병동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1인실로 이동 후 비용을 확인해보니, 호텔에서 숙박하는 비용과 비슷해보였습니다. 퇴직금을 털 필요는 없었고 가지고 있던 돈으로 해결이 가능해보여서 마음을 조금 편히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돈 걱정하는 아내에게는 호캉스 한다고 생각하자고 했고, 다행스럽게도 아내는 쉽게(?) 설득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내는 늘 뒷전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결혼할 때 저는 장교로 군 복무 중이었습니다. 아내는 낯선 타지에서 종일 남편을 기다렸지만 저는 나라를 위해 헌신한다는 이유로 늦게 퇴근하거나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잦았고, 당직이라도 있는 날에는 아내는 혼자 잠들기도 했습니다.
몇 주에 한 번씩은 양가 부모님댁을 방문하느라 둘이서 주말을 즐길 시간도 없이 바쁘게 보냈습니다. 아내는 적은 월급에 늘 아껴서 사느라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그 때는 가끔 시간을 내서 바닷가에 다녀오기도 하고 거주지 인근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했습니다.
전역하고 회사에 복직한 뒤에는 경제적으로 한층 여유로워졌지만, 바쁜 회사 일로 늦게 퇴근하기도 하고 종종 주말과 휴일에도 일했습니다. 회사 일로 바쁘지 않을 때에도 교회 일과 홀로 사시는 할머니댁을 방문하는 일 등으로 시간을 보내기 일수였고,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소홀히 했습니다.
어렵게 살았던 과거를 생각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적지 않은 돈을 썼지만, 아내와 좋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는 소홀히 했습니다. 신혼 여행도 멋진 해외 휴양지가 아니라 국내 성지순례를 하면서 호텔도 아닌 모텔에서 잤었고, 그 때는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아내와 좋은 휴양지로 휴가를 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아내가 발병하기 한 해 전, 딱 한번 여름 휴가로 1박2일 호캉스를 간 적은 있었습니다.
여름 휴가를 봉사로 시간을 보냈던(그리고 남은 며칠의 휴가도 저와 함께 교회 봉사로 시간을 보낼 예정이었던) 아내는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휴가를 누리며 기쁘게 병원 생활을 했습니다. 너무나 행복해 했습니다.
아내는 약 기운에 많은 시간 잠을 잤지만, 깨어 있을 때에는 주로 TV를 보았습니다. 그동안에 저희 집에는 TV가 없었습니다. 아내는 TV 보는 것을 좋아했는데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없었습니다. 둘이서 TV로 예능("형 따라 마야로"가 참 재밌었습니다 ㅎㅎ)도 보고, 기독교 방송도 보면서 좋은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또 아내가 어느정도 기운을 차린 이후에는 병원을 함께 산책하기도 했습니다. 때로 식사가 맛이 없을 때는 병원 편의점에서 맛있는 것을 사먹기도 했습니다.
둘이서 이런 저런 얘기도 하면서 참 좋은 휴가를 보냈습니다.
조증삽화로 입원하면 보통 2주 정도는 있는다는데 아내는 좋은 환경에서 저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낸 덕분인지 열흘 정도만에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입원 기간동안 아내를 진료하며 치료해주시고, 약을 챙겨주시고, (때때로 너무 싱거웠지만 그래도!) 맛있는 식사를 해주시고, 빨래와 청소, 시설관리 그 밖에 치료 과정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제공해주신 모든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병원 직원분들께 감사드리며, (건강해져서) 앞으로 보지 말자고 격려해주셨던 병원 목사님께 이 글을 빌려 감사를 드립니다.
아내는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당분간 먹을 약과 함께 다음 외래 진료일을 안내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희 부부에게는 이제 그동안 살아보지 못했던 새로운 삶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다음에 계속)
과장님 너무 잘읽고있어요 힘내세요💪
답글삭제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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