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양극성장애] 5편. 기도응답/재발/회복
이 글은 저와 아내가 경험한(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이전 글 : [아내와 양극성장애] 4편. 부작용)
[아내와 양극성장애] 5편. 기도응답/재발/회복
저는 무기력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갔습니다. 아내를 위해서는 밝은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도무지 그럴 힘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평소와 달리 매우 쳐져 있는 저의 모습을 보면서 더 우울해지려고 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자신 때문에 제가 힘들어 하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보가 아픈데 어떻게 내가 힘들지 않겠냐고 차분히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부터 아내가 설거지도 하고 화장실 청소도 하면서 급격히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제 기분을 좋게 해주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샤워하는 동안 아내는 듀오링고로 영어 공부도 하면서 기분 좋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는 아내의 병세를 기록하는 메모장에 이렇게 글을 적었습니다.
"할렐루야! 나의 신세 한탄과 불평불만과 탄식을 들으시고 속히 응답해주신 하나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 2025년 1월 22일 잠들기 전
새로 처방 받은 약의 효과가 나타난 것일까 싶기도 했지만, 정신과 약은 대체로 효과가 나려면 약 2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또한 만약 약효가 나타나서 아내가 호전된 것이라고 해도, 하필 약효가 난 시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새로 처방 받은 약도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이 날 하나님 아버지께서 저의 탄식에 응답해 주셨다고 믿습니다.
그 날 저는 기도 응답을 받았지만, 그것이 아내의 완치나 온전한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힘든 시간을 견딜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짧은 휴가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틀 후 아내는 혼자서 집 근처 마트를 다녀왔습니다. 그동안은 둘이서 같이 가거나 제가 혼자 가는 일이 잦았는데 혼자 다녀왔다는 것은 저에게 긍정적인 신호였습니다. 하지만마트를 다녀온 아내는 저에게 길에서 마주친 사람들이 두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자신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생각이 이상한 것임을 스스로 인지하기도 했습니다. 또 며칠 후 교회 예배에 참석했을 때에도 사람들을 마주하는 것에 대해 극심한 불편과 불안감을 호소했습니다.
아내는 전보다는 호전되어 집안 일을 조금씩 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우울감과 싸우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렇게 2주를 보내고, 진료일이 되어 다시 베드로 병원을 방문하였습니다. 리튬은 줄이고 바렙톨(발프로산)은 늘리는 것으로 처방을 받아서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변경할 때는 한번에 바꾸지 않고 점진적으로 약의 비율을 바꿉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작용이 심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약을 갑자기 복용하지 않는 것도 매우 위험합니다. (나중에는 더 많은 양을 복용해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아내의 우울감이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날마다 아내를 그렇게도 괴롭히던 우울감이 드디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종일 드라마를 보면서 틈틈히 집안 일을 했고, 심지어 교회 청소 봉사가 있는 날에는 저 없이 혼자서 가벼운 마음으로 잘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요리를 하다가 사소한 일로(자기 마음대로 잘 안 되자) 갑자가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나서 우는 일도 한번 있었지만, 아내는 전반적으로 삶의 활기를 되찾아 가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제가 회사 일로 집을 비웠는데 종일 제 때 설거지도 하고, 스스로 세운 계획도 잘 실천하면서 보냈습니다. 아내는 여전히 좀 힘든 마음(무료한 느낌)이 들 때가 있었는데 그래도 이겨내면서 보냈다고 하였습니다.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첨언 하자면, 이 질환은 정신력이나 개인의 노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병이 아닙니다. 약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합니다.
저는 기쁘면서도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혹시 조증삽화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지 주의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회사 일로 집을 비웠던 날부터 아내는 말이 빨라지고 많아졌습니다. 혼잣말처럼 말할 때도 있었습니다. 다만, 처음 조증삽화를 겪을 때 보였던 모습처럼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또 수면 시간도 8시간 이상으로 유지되었습니다. 아내는 저에게 자신의 기분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분이 업된 상태이지만 가끔 우울감이 찾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며, 그것이 두려워서 이겨 내기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기도와 성경을 가까이 하려고 해요."
불안과 기쁨 속에서 보내던 어느날, 저희 부부는 또 한번 큰 사건을 겪게 됩니다.
그 날은 지난 진료일로부터 거의 4주 다 되어가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아내는 싫어하는 편입니다. 그 날 저녁, 저는 아내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이 있어서 아내를 설득했는데, 그 과정에서 아내가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대화를 중단하고 한 시간 넘게 기도를 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진정되기를 기다렸고, 책 읽는 것은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튿날, 아내는 저에게 두 가지를 요청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새벽기도회에 가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병세에 나쁘기 때문에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은 안 될 것 같지만 말해본다면서 약을 먹지 않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1월 22일의 기도 응답에 대해서 아내에게도 말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자신이 호전된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하고 약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약의 필요성을 납득 시키려고 했고 약물 덕분에 잘 지내게 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 저에게 아내는 자신의 신앙의 색깔과 의견을 존중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옳은 말이라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 하는데, 저는 성격상 그게 잘 안 되었습니다. 결국 말 다툼 끝에 아내는 약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였습니다.
슬픔과 두려움이 저를 엄습했습니다. 아내의 그 한 마디에 제 마음은 와르르 무너졌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괴로웠고, 앞으로 벌어질 일 때문에 두려웠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가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너무 괴로워서 울었습니다. 제가 울기 시작하자 아내는 약을 먹겠다고 말하며 저에게 와서 저를 위로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눈물 콧물 쏟아가며 아내에게 하소연하듯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하나님께서 약을 통해서 여보의 질병을 치료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등등... 지난 수개월 간 쌓여 있던 감정과 생각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그 날 일에 대해서 들었는데, 제가 우는 소리를 듣자 아내는 두려웠다고 합니다. 만약 남편 아프게 되면, 남편이 지금의 자신을 돌봐주는 것처럼 자신이 남편을 돌볼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남편이 아프게 될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감정 폭풍이 지나간 후.. 아내는 약을 잘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리고 잠자리에서 아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예언의 은사를 주시는 것은 아닐까"하고 걱정이 된다고 말하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말을 듣고 이건 확실히 경조증의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진료일이 아직 며칠 더 남았지만 내일 무조건 병원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밤에 아내는 쉽게 잠들지 못했고, 계속 흥분된 상태로 "하나님께서 예언의 은사를 강제로 주려고 하시는 것 같다"며 두려워하였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설명을 들으니, 자신에게 특별한 능력이 생기면 교만해져서 잘못된 길로 갈까봐 두려웠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불현듯 전혀 다른 톤으로 스스로가 이상한 것 같다는 말도 했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잠을 잘 못자니, 리튬을 추가로 먹고 내일 병원에 가자고 말했고, 아내는 저에게 "내가 이상해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알아"라고 말하여 저를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어쨌든 아내는 리튬 300mg을 추가로 더 먹었고, 이내 아내는 잠이 들었습니다.
이튿날 병원에 가는 길에 아내는 저에게, 병원 원장님과 남편은 자신과 신앙의 색깔이 달라서 (자신은 말해도 소용이 없을 것이므로), 진료 시간에 저보고 대신 말해달라고 하였습니다.
진료 시간에 병원 원장님께 경조증 또는 조증이 진행되는 것 같아서 예정보다 일찍 왔다고 말씀 드리고, 지난 이틀 간 있었던 일도 설명 드렸습니다.
원장님께서는 아내에게도 의견을 물어보셨고, 저는 머뭇거리고 있는 아내에게 그래도 자신의 의견을 말해보라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의견(신앙적인 측면에서 생각한 질병과 치유)을 말하긴 했으나 자신도 과거 조증삽화가 발병했을 때와 지금이 유사한 것 같다고 하였습니다.
원장님께서는 한번 더 이 질병이 영/혼/육 중 육체의 질병이고 신경 세포의 신호 전달 과정에서 생기는 병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 또한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중이기 때문에 약이 중요하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설명하시는 과정에서 병세가 심해지면 망상(특별한 능력을 받거나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 같은 것이 올 수 있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줄었던 리튬을 다시 늘리고, 저녁에 추가로 쿠에타핀정(쿠에티아핀)을 복용하도록 처방을 받아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내는 오후 내내 힘들어 했습니다. 지난 2월 14일 이후로 완전히 회복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생각에 크게 낙심하였습니다. 남들처럼 하루 정도 놀고 쉬면 스트레스가 풀리고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계속 힘들게 지내야 한다는 것에 슬퍼했습니다.
2월 14일 : 아내가 우울감이 사라지고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 날입니다. 아내는 그 날 새벽에 기도문을 적었는데 그 때부터 좋아졌다고 생각하여 신앙으로 이 병을 이겼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어제부터 자꾸 마음 속에서 선한 것과 악한 것이 싸우고 있다는 말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예전처럼 힘들어서 아무것도(신앙생활, 집안일 등)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더더욱 기도와 말씀(설교) 듣기를 힘쓰려고 했는데,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어제부터 설교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바짝 든다는 말도 했습니다.
제가 곁에서 봤을 때 아내는 사고의 흐름이 조금 이상해져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처음에 "선한 것과 악한 것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계속 설교를 들어야겠다"고 말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인지 아닌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다가, 어제 저와 겪은 갈등(하나님의 은혜로 다 나았음을 증명하고 싶어서 약을 먹지 않고 싶다는)은 "설교를 듣다가 그런 생각을 한 것인데 설교를 듣더라도 사탄이 교묘히 속일 수 있다"고 말하며 걱정스러워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약을 먹고 있으므로 신호 전달이 정상화되면 설교를 확대 해석하는 일은 없을 것이므로 안심하고 봐도 된다"고 하자, (저와는 의견이 다른지) 갑자기 "다시 생각해보니 설교에서 약을 먹지 말라고 한 적은 없었는데 그냥 스스로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라고 하면서 설교를 들어도 문제가 없다며 안심하였습니다.
이후로 아내를 자극하면 병세가 나빠질 것 같아서 의견이나 생각이 달라도 가능한 설득없이 아내의 말을 그대로 받아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다만 아내가 "병세가 더 나빠져서 병원에서 지내야 할 것 같다"고 하거나 "병원에서 지내고 싶다"고 할 때에는, 그렇게 병세가 나쁜 건 아니라고 알려주고(경조증일 때 일찍 병원에 갔으므로), 또 곧 괜찮아 질 것이라고 위로하였습니다.
한편 아내는 오후에 AI관련 내용을 다루는 TV 프로그램을 보았는데, 평소에는 전혀 보지 않는 유형의 프로그램을 왜 보는지 물어보니,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도 소통을 하려면 이런 것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들어서"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저는 아내의 생각을 바꿔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였습니다.
이 날도 수요일이라서 저녁예배가 있었는데, 저희 부부는 점심/저녁 모두 외식을 하고, 예배에도 잘 참석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다시 예전처럼 설교 듣는 것을 힘들어 했습니다. 집안 일 하는 것도 다시 힘들어 했고 씻는 것도 힘들어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내의 곁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며 곧 지나갈 것이라고 위로하였습니다. 아내는 한참 후에 간신히 샤워를 했는데, 그 때부터 기분이 조금 나아졌고, 듀오링고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새로 추가된 약(쿠에티아핀) 때문에 자다가 깨서 화장실을 갈 때 거의 만취한 사람처럼 알아 듣기 힘든 발음으로 말하며 비틀거렸습니다. 그래도 무척 잘 잤습니다.
이튿날, 아내는 약 기운에 늦게 일어났습니다. 집안 일을 하려고 애썼으나 하지 못했고, 저녁은 (식사 준비 문제로) 외식을 했는데 전날보다 아내의 사고의 흐름이 이상해서 가능하면 집에서 식사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오후 내내 기독교 방송에서 설교를 들으며 졸면서 보냈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은 악한 생각을 떨쳐 내려고 애를 쓰는 것이었습니다. 아내가 자신의 병이 심각하다고 생각하고 있길래 기다리면 좋아질 것이라고 권면을 하니, 아내는 아니라고 절규하며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뒤로는 권면을 하지 않고 그냥 아내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기만 하였습니다. 아내는 이 날, 감정적으로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낮잠을 많이 자서 그런지 어제 보다는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자주 뒤척였습니다. 중간에 잠깐 깼을 때 어눌한 발음을 이겨내며 잠시 흥분조로 말하기도 했는데, 발음이 어눌해 진 것은 약 때문이라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사흗날, 아내는 점심 쯤 일어나 역시 거의 졸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힘들어 하기는 했으나 전날 만큼은 아니었으며, 이 날은 정신적인 힘듦보다는 육체적인 힘듦(약 부작용으로 인한 기운 없음 등)을 호소하였습니다. 저녁 식사 후 드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하여 두 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했는데, 대화하는 동안에는 지난 주 쯤 상태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아내는 기분 좋은 상태로 여러 이야기를 했는데, 특히 대화 과정에서 자신이 "그동안 왜곡된 시선으로 사람들과 상황들을 보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그 날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났던 것이 제가 아내를 힘들게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자신이 잘못 생각했고 치료가 필요한 상태라고 받아들였습니다. 이 날 아내는 약을 먹고 금방 잠들었습니다.
나흗날, 이 날은 아내의 지인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병세 때문에 참석 여부를 고민했으나, 저는 자극되는 일만 없다면 현재 병세가 호전되는 중이었으므로 가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다만 아내는 아침약 기운에 육체적으로 다소 힘들어하다가 한 시간 정도 쉰 뒤에 다시 준비를 마치고 결혼식에 참석하였습니다.
결혼식장에서 모교회 사람들을 많이 만났으나 특별한 마찰을 겪지는 않았습니다. 식사는 가족들과 함께 앉아서 하였는데, 아내는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른 사람들과 식사를 했다면 많이 힘들었을 텐데 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되어서 다행이었다고 말하였습니다. 아직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힘든 것 같았습니다.
오후에는 아내가 친정 어머니께서 알려주신 자연 풍경 영상을 보고 싶다고 하여,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이후 아내는 저녁 식사 준비를 의욕적으로 하기 시작했는데, 저도 아내를 도와 함께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저녁 식사 후에 아내가 설거지를 하다가 갑자기 화가 난 듯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과거 일들이 떠올라서 괴롭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결혼식에서 오랜만에 지인들을 만난 것이 영향을 끼친 것 같았습니다. 아내는 꽤 힘들어 했으나, 기독교 방송에서 설교를 들으며 한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고 저녁(취침) 약을 먹고 잘 잠들었습니다.
다만 아내가 저녁 약을 먹을 때 제가 멍청한 결정을 했는데, 아내가 몸이 너무 힘들다고 해서 영양제를 같이 먹게 했습니다. 그 때문에 아내는 전날보다 조금 더 늦게 잠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잠들고 나서 초반에 기분 좋은 상태로 잠꼬대를 몇 번 했습니다. 무척 귀여웠습니다. 이 날은 감정적이나 육체적으로 힘들어 할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정상적으로 대화가 가능했습니다.
닷샛날, 이 날은 일요일이었으나, 아내는 많이 피곤해서 예배에 참석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아직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은 좋지 않아보였습니다. 그래도 지난 며칠 간 집안 일은 거의 제가 했었는데, 이 날은 아내가 수건 빨래를 하였습니다. 이 때까지는 아직 사고의 흐름이 이상할 때가 가끔 있었으나, 점심 식사할 때 저와 대화를 나누는 아내의 모습은 재발 전 쯤의 상태처럼 보였습니다. 오후에는 함께 드라이브를 하였습니다. 저녁 약을 먹고 나면 몸이 무겁다며 많이 힘들어 했는데 이 날은 그런 것 없이 기분 좋게 잘 잠들었습니다. 다만 잠들기 전에 제가 씻는 동안 혼자 있으면서 왠지 모르게 슬퍼서 잠깐 울었다고 했습니다.
엿샛날, 아내는 하루를 대체로 잘 보냈습니다. 설거지도 하고 저녁에 밥도 했습니다. 샤워도 잘 했습니다. 저녁 약(쿠에티아핀) 부작용에 약간의 내성이 생겼는지 덜 피곤해 했습니다.
이렛날, 아침에 아내가 깰 때에 제가 가까이 다가갔는데, 아내는 제가 목을 조르려는 줄 알고 놀래며 일어났습니다. 아내는 이 일 외에는 특별한 문제 없이 하루를 잘 보냈습니다. 오전에 설거지도 하고, 저녁 식사 준비도 하고, 집에 많이 있는 양파를 처리하기 위한 요리법을 유튜브에서 찾아보기도 하고... 이제는 사고의 흐름이 이상하지도 않고, 제가 듣기 힘들만큼 말을 많이 쏟아내지도 않습니다.
저녁 약을 먹고 나서 잠들기까지의 시간이 점점 더 오래 걸리기 시작했고, 오후에는 다리를 짓누르는 것 같은 피곤함을 호소했습니다.
여드렛날, 아내는 감정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은 거의 하지 않으나, 몸이 힘들다는 표현을 자주하고 얼굴도 힘들어 보였습니다. 감정적으로 어떤지 물어봐도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저에게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아내는 집안일이나 교회 봉사에 부담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제가 가능하면 신경쓰지 않도록 권면했으나 스스로가 잘 안 되는 듯 했습니다 (평소에도 책임감이 강하고 걱정이 많은 편입니다).
한편 아내는 여전히 약 기운 때문에 대다수의 시간을 기독교 방송에서 설교를 들으며 졸면서 보냈습니다.
저녁에 제 안색이 안 좋았는데(왜 안 좋았는지는 기록도 안 남아 있고 기억도 안 나네요 ㅎㅎ;;), 아내가 그것을 보고 화장실 청소를 했습니다. 지난 1월 22일에 있었던 일이 떠올라서 그랬다고 합니다.
이 날은 저녁 약을 먹고 잠들기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열닷샛날, 아내는 여전히 감정적/육체적으로 힘들어 하지만 집안일도 조금씩 하고 취미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며칠 전에 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는데 이 날도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그런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저를 배려해서 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
열엿샛날, 아내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비교적 잘 보냈으나, 오후에 취미 생활을 하다가 마음대로 잘 안 되자 화가 많이 났고 무척 괴로워 했습니다. 그러면서 천국에 어서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녁 식사 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감정적으로 좋아졌고, 이후 시간은 잘 보냈습니다.
이제는 약 부작용에 적응이 되었는지 저녁 약을 복용한지 한 시간이 넘도록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열여드렛날, 이 날 아내는 매우 힘들어 했습니다. 데이트하면서 돈 쓰는 것도 매우 불편해 했습니다 (아내는 평소에도 돈 걱정이 많습니다). 저도 기분이 안 좋아져서 잠시 냉전이다가, 저녁에는 청소도 같이 하고 식사 준비도 같이하면서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분이 나빠져서 푹 쳐지면 환자인 아내가 간병인인 저를 많이 배려해 줍니다.
스무하룻날, 아내는 전날과 이날 모두 우울감 없이 잘 보냈습니다. 재밌는 예능도 보고, 식사 준비도 하면서 잘 보냈습니다. 우울감이 없어지면 강박(설교만 들어야 한다거나 성경만 읽어야 한다거나)이 없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스무나흗날, 아내는 지난 며칠 간 대체로 우울감 없이 일상을 잘 보냈습니다. 다만 가끔 마음대로 일이 잘 안 될 때에는 급격하게 울적해지고 잘 회복이 안 되었습니다. 이 날은 점심 요리를 실패해서 오후 내내 조금 우울하게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오후에는 취미 생활과 신앙 생활을 하며 잘 보냈고, 저녁에는 기분 전환을 위해 외식을 했는데 그 뒤부터 좋아졌습니다.
스무닷샛날, 이 때쯤부터 아내가 부쩍 손떨림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저녁에 먹는 향정신성약물(쿠에티아핀)의 부작용일 것입니다. 아내에게 약 부작용이라는 얘기를 한 번 더 해주었습니다.
서른날, 이 날은 진료가 있었습니다. 이 때 원장 선생님께서 지난 2월 14일부터 우울감이 사라진 것은 경조증이었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내는 그 말씀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하였습니다. 이제는 안 좋으면 안 좋다고 말하고 약을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동안은 신앙인으로서 약을 먹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질문도 계속 있었고, 부작용 때문에도 많이 힘들었다고 했습니다.
이후부터 한 달 보름 정도의 기간동안 아내는 대체로 잘 지냈습니다. 점점 집안 일도 의욕적으로 해나갔고, 제가 일하는 동안 혼자서 하루를 잘 보냈습니다. 다만, 가끔씩은 제 생각에는 사소한 일에 과하게 화를 내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제가 아내에게 수건 빨래할 때 온수 온도를 높여서 해달라고 부탁하자, 저에게 매우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저는 꼼꼼한 편이고, 아내는 그런 저의 말을 강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어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발병 전에는 저에게 그렇게 화를 낸 적이 없었던 터라 저는 약물 부작용이거나 병세이지 않을까하고 생각을 해봤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그동안 꾹꾹 참기만 하며 살던 것이 정상화(?) 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경조증이 온 지 세 달 하고도 보름 정도 지났을 때부터 아는 혼잣말로 기도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종종 혼잣말로 기도하는데 화장실에 갔을 때나 방에서 성경 공부를 하다가 그러는 것이었고, 쉬지 않고 계속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걱정이 조금은 되었습니다.
아내의 일상 생활은 과거와 비교하면 눈에 띄게 좋아졌는데, 주로 성경 공부를 하다가, 해야 할 집안 일이 생각났거나 계획된 시간이 되면 집안 일을 하였습니다. 그 전에는 할 일이 생각도 잘 안 났고, 생각이 났더라도 실천할 의지가 없어서 미루고 미루면서 괴로워하기만 했는데, 이 때쯤 부터는 그러는 일 없이 잘 해냈습니다.
이후로 계속 잘 지냈으면 좋았을 텐데 또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아내와 함께 한 달에 한 번 선교단체에서 진행하는 기도집회에 참석했었는데, 한번은 망상으로 생각되는 일이 있었고 아내는 병세가 나빠질 것을 염려하여 집회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저도 아내의 감정적으로 격해질 수 있는 일은 자재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며칠 뒤부터는 아내가 부쩍 깨닫는 것이 많아져서 그걸 저에게 신나게 말했습니다. 성경을 빠르게 소리내서 읽거나 기도를 빠르게 소리내서 하는 일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또, 처음에 조증 삽화로 병원에 입원했던 일을 영적인 문제로 생각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아내가 다시 경조증이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이 되었습니다. 연휴를 앞두고 병원에 가야 하나 아니면 다음 주에 예정되어 있던 진료일에 맞춰서 가야 하나를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않았습니다.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주말에 지인 결혼식에 갔는데 아내는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어려워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경조증이 오는 것 같았던 아내의 병세는 다시 좋아졌습니다.
이 때 쯤 병세가 다시 심해졌던 것이, 제가 회사 일에 신경을 쓰느라 아내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소홀히 했고 주말에는 여러 일이 있어서 둘만의 시간을 잘 보내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동안에도 제가 아내와 시간을 잘 보내면 아내의 병세가 호전되고, 그렇지 못하면 나빠지는 경험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듭니다.
진료일에 원장 선생님께 이런 일이 있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니, 원장님께서 약을 복용 중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간 것일 수도 있다고 하시며, 유사 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침에 추가로 복용할 쿠에티아핀을 추가로 처방해 주셨습니다. (다행히 이후로 몇 개월 지난 현재까지 추가 약을 먹을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한편 아내는 이 진료 이후부터 며칠 정도 우울해 했습니다. 그동안 자신은 잘 지내는 줄 알았는데, 제가 한마디 말도 없다가 진료 시간에 경조증이 왔었던 걸로 의심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로 낙심이 되어서 힘들어 하며 집안 일도 잘 못했으나, 며칠 뒤에 잠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다시 마음을 회복 시켜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은 잠깜은 즐거워도 보고 난 후에는 마음이 더 힘들어 지는데, 말씀(TV 설교)을 듣는 가운데 마음이 회복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지난 5일 간 말씀(성경, TV 설교)을 읽거나 듣는 게 잘 안 되었지만 계속 노력했다고 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이튿날 있을 교회 봉사(청소와 식사당번)를 잘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좋아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내의 아픔을 살펴보시고 속히 괜찮아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시간이 속히 지나가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2025년 6월 20일
시간이 좀 더 흘러 7월 초부터, 아내는 들뜨거나 흥분한 느낌 없이, 활기 있게 집안 일도 하고 주변 상황도 잘 받아들이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병세가 좋아졌을 뿐만 아니라 마음 가짐도 달라져서 아내 말에 의하면 자기 자신에게 후해졌고, 그래서 더 잘지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아내는 지난 4월부터 다시 리튬을 반으로 줄였고, 5월부터는 완전히 없앴으며, 이후부터는 바렙톨(발프로산)과 쿠에타핀(쿠에티아핀)만 복용하고 있습니다.
10월 한글날을 기준으로 요즘의 아내는 가끔씩 특별한 일도 있지만, 그래도 회복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좋아 보입니다. 아내가 이 말을 적어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 신나게 놀면 회복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1년 넘게 놀아봤지만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신앙으로 이겨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성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가끔씩 잘 지내던 시기도 있었으나, 그 때도 집안일은 간신히 하였습니다. 지금은 생각도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집안일도 잘 하고 있습니다. 이 질병은 자신의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도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이 올지도 모르죠, 그런 날엔 잠시 쉬어가면 됩니다. 가끔은 견디히 힘든 날들이 올지도 모르죠, 그런 날엔 기도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그 순간만 버티면 곧 지나갑니다. 이것들은 지난 2년 간 저희 부부가 배운 것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아시아 선교를 계획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고 다른 길로 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을 때 그 이면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뉴노멀", 코로나19 대유행(팬데믹) 당시 종종 들었던 단어입니다. 이제 저희 가정은 혼란의 시기를 지나 뉴노멀을 살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예전처럼 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내는 앞으로도 계속 재발 방지를 위해서 약을 복용해야 하고, 감정이 격해지는 일은 피해야 하며,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병원을 방문하여 진료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조증삽화나 울증삽화가 찾아오면 약 처방을 바꾸기도 하고, 일상을 뒤로한 채 쉼을 가져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함께 잘 해쳐 나갈 것입니다. 어쩌면 아내는 앞으로 더 좋아질지도 모릅니다.
저는 일 중심의 삶에서 벗어나, 아내 중심의 삶을 살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이번 계약 기간이 끝나는 내년 중순 쯤에는 회사(프리랜서)를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때때로 아내를 뒷전으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더라고요. 핑계낌에 당분간 저도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쉬고요 ㅎㅎ
그동안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앞으로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 내 일처럼 함께 걱정해 주시고, 기도해 주시고, 위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끝으로, 지금까지 이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고, 세심하게 검토해 준 아내에게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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