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양극성장애] 2편. 정신병원
이 글은 저와 아내가 경험한(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아내와 양극성장애] 2편. 정신병원
길고 길었던 밤이 지나고 일요일이 되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교회 봉사로 아침 일찍부터 교회에 갔겠지만 이날은 뭘 어떻게 해야 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대화가 되는 것 같다가도 생각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고, 저의 통제로부터 벗어나고자 애를 썼습니다. 아내는 기도원에 가겠다며 강하게 주장했고 저는 집을 나서는 아내를 더는 막지 못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버거운 상황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진작에 구급차를 불러서 병원에 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혼란스러웠고, 또 저는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정신질환으로 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통원치료를 진행하는 것과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것이 전혀 다른 의미였습니다. 정신병원에 아내를 입원 시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곳에 아내를 버려두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깊은 절망감에 슬퍼하고 있었던 것도 잠시... 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내가 교회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는 몰랐었는데 아내는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았기 때문에 자칫 실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자신있게 집을 나섰다가 갈 곳이 없어서 교회로 향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교회로 가게 해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드립니다 (저의 어린 시절, 가출한 뒤에 갈 곳이 없어서 교회로 갔던 일이 떠오르네요. 그 때도 교회로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참고로 조증삽화 상태에서는 환자가 이상한 행동을 하기 때문에 나중에 환자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지만, 정신이 돌아온 뒤에도 환자는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 심지어 왜 그렇게 했는지를 모두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는 그것이 이상한 줄 몰랐다고 합니다. 조증삽화는 마치 꿈꾸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꿈속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더라도 의구심을 갖지 않습니다. 설령 의구심이 생기더라도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납득해 버립니다. 그러다가 잠이 깨면 그것이 이상했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잠시 후 아내는 교회 어르신 몇 분에게 이끌려 안전하게 집에 돌아왔습니다. 저는 혹시나 모를 아내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집 밖에 나와 있었고, 아내는 교회 어르신들과 예배를 드리다가 잠들었습니다. 교회 어르신들께서는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아내를 진정시켜가며 며칠 간 쌓여 있던 집안일을 해주셨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오후가 되었습니다. 드디어 간절히 기다리던 처가댁 가족들이 도착했고, 비타민D 부족으로 인한 정신이상 가능성과 수면/식사량 부족으로 인한 가능성이 제기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하여 모두 처음 겪는 일이었고 정신질환에 대한 지식도 희박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전히 아내의 증상이 정신질환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햇빛이 거의 안 드는 집이지만 아내는 영양제를 먹고 있었고, 단순 수면/식사량 부족이라고 하기에는 며칠 간 보았던 아내의 행동이 매우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일단 아내의 기분 전환을 위해서 드라이브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 뒤에는 병원 응급실에서 영양 주사를 맞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드라이브를 하기 전에 일중독인 제가 먹던 (피로 회복에 좋은 활성 비타민B가 들어 있는 고용량) 영양제를 아내에게 먹였습니다.
드라이브 후 병원에 가기 전에 아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여 다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운전을 했던 처제네 가족은 차에서 기다렸고, 저는 (거의 앉아 있을 기운도 남아 있지 않던) 아내를 부축해서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출입문 앞에서 집안으로 들어가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더니 저를 악한 영이라고 하면서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아내를 자극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출입문을 열고 혼자서 먼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바로 그 때... 갑자기 불길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분명히 아내는 앉아 있을 기운도 없이 출입문 앞에 만취한 사람처럼 누워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뛰쳐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멍청하게 신발까지 벗고 집 안에 들어서 있던 저는 다급하게 신발을 꺽어 신고 아내를 뒤쫓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를 놓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감과 꺽어 신은 신발 때문에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가득 않고 전력으로 아내를 뒤쫓았습니다. 반면 아내는 신이 난 모습으로 뛰어갔습니다. 제 생각에는 드라이브 전에 먹였던 영양제 효과로 일시적으로 아내에게 힘이 났던 것 같습니다.
여보야 기다려... 제발 가지마... 여보야 여보야... 저는 아내를 애타게 부르며 뒤쫓아 갔습니다.
그러나 아내는 뒤따라 오는 저를 보더니 도망을 가기 시작했고, 붙잡힌 이후에는 저를 보며 마치 귀신이나 악마라도 본 것과 같은 표정을 지으며 완강히 저항했습니다. 그런 아내의 표정과 행동은 저에게 매우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다른 선택지가 없고 병원에 입원 시킬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강히 저항하던 아내를 반 강제적으로 처제네 차에 태워서 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어린아이처럼 논리적이지 않은 말에 설득되다가도 이내 사고의 흐름이 이상해져서 통제가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큰 저항 없이 병원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제가 사는 춘천에는 대학 병원이 두 곳 있습니다. 강원대병원과 한림대병원입니다. 처가댁 부모님께서는 한림대병원 응급실에서 저희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처가댁 부모님께서는 먼저 병원에 가 계셨기 때문에 조금 전에 겪은 이 사건을 알지 못하셨습니다.
동상이몽처럼 저는 아내의 정신병동 입원을, 처가댁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영양주사를 생각하며 응급실에 접수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잠잠했던 아내가 점점 통제가 안 되더니 이내 응급실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으라고... 그리고 자신이 예수라고...
나중에 아내에게 들은 설명에 의하면 자신을 예수라고 했던 것은 아주 작은 생각이 발전한 결과였습니다.
지난 편에서 말씀 드린 것처럼 아내는 곧 자신이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내는 평소에 우울감으로 힘들어 했고, 종종 저에게 어서 천국에 가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아마도 이러한 소원이 조증삽화를 겪는 아내의 생각에 반영되었고, 아내는 곧 자신이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점점 여기가 천국인지 아닌지를 햇갈려하기 시작했고, 아내는 천국에 계신 예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내는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가 우리는 모두 작은 예수(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비유적인 표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예수님을 찾고 또 찾다가 결국 찾지 못하자 이내 자신이 예수님이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응급실에서 아내가 소란을 피우자 직원분이 오시더니 한림대 응급실에서는 정신질환 분야는 운영하지 않으니 강원대 응급실로 가보라는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구급차를 타고 가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고, 두 병원 간의 거리가 가까웠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금 아내를 달래어 자차로 이동했습니다. 이것은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습니다. 조금 기다리더라도 구급차를 타고 가야 즉시 응급실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 자차로 이동하는 바람에 몇 시간이나 더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겨우 차례가 되어 몇 가지 검사 후 아내의 입원 절차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아내만 입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담당의사 선생님께서 혹시 배우자인 저도 입원이 가능하다면 같이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 세상에! 아내의 앞날에 대한 걱정과 정신병원(정신병동)에 대한 불신이 있던 저에게는 출근이나 다른 일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대답은 무조건 YES였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병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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