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양극성장애] 1편. 무지개

이 글은 저와 아내가 경험한(그리고 경험하고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글을 통해서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개선되기를 바랍니다.


[아내와 양극성장애] 1편. 무지개



2023년 8월.

저는 아내와 함께 여름 휴가를 겸하여 타지에서 봉사활동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유난히 큰 무지개가 보였고, 제가 운전하는 동안 아내는 열심히 무지개 사진을 찍었습니다.

둘 다 생전 처음보는 엄청난 크기의 무지개였습니다.

성경에서 무지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약속의 증거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이 무지개를 보게 된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한 계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앞으로 힘든 일이 벌어지겠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을 굳게 믿으라는 그런 뜻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 저와 아내는 기독교 관련 행사에 봉사자로 참여했었습니다.

며칠 간의 봉사활동이 끝나는 마지막 날, 아내가 뭔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습니다.

몸을 거의 가누지 못했는데 며칠 간 잠을 거의 못 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머지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저희는 먼저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집에 가는 차에서 아내가 벌레 한 마리를 보더니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아내의 기분이 좋아보였기 때문에 저는 하나님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기분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쁘고 행복할 때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니까요.


집에 도착했는데 아내가 좀 이상했습니다.

말을 쉬지 않고 하는데, 찬양을 하는 것인지 기도를 하는 것인지... 혼잣말을 계속 중얼 거렸습니다.

이튿날 출근 후 집에 돌아온 저는 아내가 매우 이상해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에게 특별한 영적인 능력이 생겼다고 생각을 하기도 하고, 교회에서 상처 받았던 일들을 꺼내며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로 자신의 힘듦을 이야기 했는데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으나 그동안 아내에게 소홀히 했던 저에 대한 서운함으로 느껴졌습니다.

 

아내는 20대 초에 몸의 이상 증상으로 검사를 받았으나 신체적으로 다른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결과적으로 "가면 우울증"과 "신체화 장애"로 진단을 받았습니다.

당시 아내는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처방 받았으나, 신앙으로 이겨내고자 하여 약을 복용하지 않았으며 결혼을 하고 나서도 계속 우울함을 호소하며 지냈습니다.

제가 아내에게 신경을 써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일중독이고 목표 지향적인 성격이라서 아내를 잘 챙겨주지 못했습니다. 챙겨주기는 커녕 휴일에도 일을 하고, 쉬는 시간 조차 혼자서 뭔가를 하기 바빴습니다.


아내가 이상해졌다는 것을 감지한 그 날, 저는 더는 아내의 우울증을 방치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담이든 약물 치료든 뭐가 되었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완강히 거부하는 아내를 설득하여 간신히 상담 치료를 받기로 하고 상담소로 향했습니다. 상담 후에 검사지를 받아들고 우리 부부는 집으로 향했습니다.

아내는 괜찮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영적으로 특별한 능력이 생겼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내가 하는 말들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때 즉각 반론을 제시하며 대화를 이어 갔는데, 이러한 저의 태도는 아내를 더욱 자극했습니다.


이튿날, 아내는 갑자기 미국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저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고도 했습니다. 나중에 아내에게 들었는데, 그 때 미국에 가서 선교를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미국에 가면 누군가가 자신을 입양해서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생각이지만, 조증삽화일 때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생겨서 환자 본인은 그것이 이상한지 아닌지 전혀 인지하지 못합니다.)

자꾸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남편과 이혼을 고려하던 아내는, 급기야 하나님께 물어보자고 저를 독촉했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우리는 (사다리타기 프로그램으로) 제비를 뽑았습니다.

당연히 이혼하지 않는 것으로 결과가 나올 줄 알았지만, 충격적이게도 이혼을 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왔습니다. 너무나 충격을 받았고, '하나님 대체 왜 이런 상황에 이렇게 하시는 거에요. 저보고 대체 어떻게 하라고요'라며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래서 제비를 안 뽑습니다. 그 때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주 아찔합니다.')

충격을 받은 것은 아내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저와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다는 그동안의 고백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자신의 욕심으로 잘못된 결혼을 했다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형제님 그동안 속여서 죄송합니다."라며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잘못 알고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미안하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애초에 제비는 뽑을 필요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우리는 결혼할 때 하나님 앞에서 평생을 함께 하기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불리하거나 실수로 한 맹세이더라도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한 맹세는 꼭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과 기브온 사람들 간의 맹세를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집을 떠나려는 아내를 붙들고, '잠깐 이혼을 하더라도 다시 합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겠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정상이 아닌 상태의 아내를 두고 이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내에게 다시 제비를 뽑되 이번에는 두 번 연속 이혼하는 것으로 결과가 나오면 그 때는 이혼하자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제비(사다리타기) 결과는 이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매우 실망스러웠고 다음 결과도 이혼으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결과는 이혼하지 않는 것으로 나왔고, 아내는 간신히 설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때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제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인해보기 위해서 그러셨던 것이라고 저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래 전, 이삭을 인신제사로 받기 원하셨던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시험하셨던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일부로 원하는 것과는 반대로 말해서 상대방을 시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상대방이 정말로 원해서 그것을 선택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한 그 약속을 성실히 지킬 것입니다. ('오 하나님 아버지,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도와주세요')


오후가 되자 아내는 더욱 이상해졌습니다. 자신이 곧 죽어서 천국에 갈 것이라고 생각하며 주위 사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내가 더 이상해지기 전에 대화라도 나눌 수 있도록 처가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이런 상황에서 응급실을 통해 입원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지인이 근무하는 정신건강의학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기 때문에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장인어르신과 장모님께서는 이튿날 오시기로 하였습니다.


밤이 되어 아내는 간신히 잠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런 아내 옆에 누워있던 저는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어려운 일을 여럿 겪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는 그런 힘든 시간들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마치 욥이 당한 고난처럼 예고도 없이 한순간에, 아내의 정신이 이상해졌고, 다시는 제가 알던 아내를 만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에 너무나 비통했습니다.


(다음에 계속)

댓글

  1. 마침 오늘 기독교 간증 프로그램인 "새롭게 하소서"에서 양극성장애(조울증)를 겪은 분의 사연을 보았습니다.
    양극성 장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댓글로 링크 남깁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8E20nLv3vk&t=56s
    (조우네 마음약국 고하영 집사님의 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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